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델 커리 (문단 편집) == NBA 시절 == 1982년에 버지니아 공과대학교로 진학하여 찰스 모이어(1930~2019) 감독[* 그는 커리 외에 페리 영, 빔보 콜스도 발굴/육성한 바 있다.]의 지도 하에 1983-84 시즌엔 NIT에 진출하여 농구부를 3위까지 가게 했고, 1984-85 및 1985-86 시즌에 두 차례 NCAA 전국대회 진출에 기여했다. 통산 2,389득점, 295스틸을 기록했으며 올-메트로 컨퍼런스 퍼스트 팀 3회(1984~1986), 올-아메리칸 세컨드 팀 및 메트로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상(1986) 등을 각각 받았다. 야구부에선 척 하트만 감독[* 프랭클린 스텁스, [[조지 카날리]] 등의 스승이기도 하다.]의 지도 하에 투수로서도 6승 1패, 방어률 3.81의 성적을 남겼다. 1985년에는 MLB 드래프트에서 [[볼티모어 오리올스]]로부터 14라운드 359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거절했고[* 당시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을 보면 [[배리 라킨]](1라운드 4순위), [[배리 본즈]](1라운드 6순위), [[라파엘 팔메이로]](1라운드 22순위), [[랜디 존슨]](2라운드 36순위), [[데이비드 저스티스]](4라운드 94순위), [[채드 크루터]](5라운드 109순위), [[디온 샌더스]](6라운드 149순위), [[알 마틴]](9라운드 198순위), [[브래디 앤더슨]](10라운드 257순위), [[보 잭슨]](20라운드 511순위), [[존 스몰츠]](22라운드 574순위), [[짐 애보트]](36라운드 826순위) 등이 있다.] 농구의 길을 선택했다. 1986 드래프트 1라운드 15순위로 [[유타 재즈]]에 지명되어 1시즌간 뛰었고, [[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]]에서도 1시즌간 뛴 그는, 1988-89 시즌부터 [[샬럿 호네츠]]에서 플레이하게 되었다. 동기 입단선수에는 [[먹시 보그스]], 리키 그린 등이 있었다. 샬럿에서만 10시즌을 뛰었고 그 후 [[밀워키 벅스]], [[토론토 랩터스]]에서 뛴 뒤 은퇴했다. [[샬럿 호네츠]]의 프랜차이즈 선수 중 한명으로 오랫동안 샬럿의 통산 득점(9,839점)과 3점 슛(929개)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. 이 기록들은 모두 이후 샬럿의 프랜차이즈 스타 [[켐바 워커]]가 경신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. 16시즌 동안 커리어 통산 11.7득점(45.7%), 2.4리바운드, 1.8어시스트, 0.9스틸을 기록했고, 통산 3점 슛 성공률은 40.2%(게임당 1.1개 성공)이다. 커리어 하이인 1993-94 시즌에는 16.3득점(45.5%), 3.2리바운드, 2.7어시스트, 1.3스틸, 3점 슛 성공률 45.5%(게임당 1.9개)를 기록했다.[* 아들 [[스테판 커리]]가 평균 10개 가까이 던지고 [[클레이 탐슨]], [[데미안 릴라드]], [[제임스 하든]], [[켐바 워커]], [[카일 라우리]]도 최소 7개 이상의 3점 슛을 던지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는 평균 4개만 시도해도 상당한 시도였다. 역대 3점 슛 성공 2위이자 1987 드래프트 지명선수인 그 유명한 [[레지 밀러]]의 커리어 평균 3점 슛 시도가 5개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마저도 2000년대 초반부터 조금씩 3점 슛의 가치가 증가하던 시기에 많이 늘어난 점을 볼 때 실질적 전성기 시절 밀러도 평균 경기당 4개밖에 시도하지 않았다. 따라서 출전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커리의 1.1개 3점 슛 성공은 절대 과소평가할 성공 개수가 아니다.] 1993-94 시즌에 NBA 올해의 식스맨 상을 수상했다. 지금은 [[스테판 커리]]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지만 선수 시절에는 3점 슛 스페셜 리스트로 유명했던 선수였다. 준수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좋았던 선수는 아니라 주전보다는 [[식스 맨]]으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, 당시 주전 스몰 포워드였던 쟈니 뉴먼보다 출장시간이 더 길었던, 식스 맨이었지만 사실상 주전이나 마찬가지였던 선수였다.[* 주전이라고 해도 5명 전부 경기당 30분 이상 소화하는 팀은 없다. [[시카고 불스]] 전성기 시절에는 오직 조던, 피펜만이 37분 이상 뛰었고 로드맨은 30분대 초반 출전시간을 기록했으며 페이스가 더 빨라진 현대 흐름에서는 [[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]]를 제외한 대다수의 팀 주전은 3명 정도만이 핵심 선수로서 경기당 35분을 소화한다.] 후보로 나선 경기에서 통산 11,147점을 기록해 오랫동안 역대 NBA 벤치 출장 경기 통산 득점 1위에 올라 있었고, 이 기록은 2019년 [[루 윌리엄스]]에 의해 경신된다. 1990년대 초중반 [[샬럿 호네츠]]는 [[알론조 모닝]], [[래리 존슨]], [[먹시 보그스]] 등 당시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많아 NBA를 대표하는 인기팀 중 하나였고 따라서 인기팀의 주력 선수였던 델 커리도 1990년대 당시 한국 NBA 팬들에게도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졌던 선수였다. 샬럿에서 전성기를 마치고 [[토론토 랩터스]]로 이적한 이후 3시즌을 보내고 은퇴했다. 이 때의 인연 때문인지 2018-19 시즌 토론토의 최초의 파이널 경기에서 초청받아 팬들에게 인사했다.[* 모자는 [[스테판 커리|아들]]의 팀 골든스테이트 모자를 쓰고 나왔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